삼성서울병원의 한 저명 의사가 약 2년 전 계약직 간호사를 성추행했고, 피해 간호사가 직속 상사에게 이를 알렸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병원을 떠나야 했던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지금까지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며 뉴스타파에 사건의 전말을 폭로했다.
회식 중 “구토 도와달라”...화장실 문 걸어 잠그고 강제 키스 등 성추행
사건은 지난 2016년 5월 4일 밤에 벌어졌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외과수술 보조역으로 일하던 간호사 A씨는 업무를 마친 뒤 수술방 동료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엔 당시 췌담도암센터장이던 허 모 교수를 포함한 의사 2명과 간호사 3명, 제약회사 직원 1명이 동석했다.
회식 도중 허 교수는 ‘술을 많이 마셔 구토를 해야겠다’며 A씨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허 교수를 존경해 오던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허 교수를 도와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허 교수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A씨 주장에 따르면, 허 교수는 화장실 칸막이 문을 잠그더니 A씨의 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입 안으로 강제로 집어넣었고, A씨가 이를 뿌리치자 A씨를 벽으로 밀어붙인 뒤 강제로 입을 맞췄다. A씨가 다소 울먹이며 항의하자 허 교수는 사과했다. 다시 회식 테이블로 돌아온 A씨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회식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만취한 동료 간호사 집까지 따라와 2차 성추행...충격 못이겨 자진 퇴사
하지만 허 교수의 성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동석했던 동료 간호사 B씨가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던 탓에, B씨를 자취방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택시를 탔다. 그런데 돌연 허 교수가 이 택시에 올라타더니 급기야 B씨의 자취방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것이다.
A씨 진술에 따르면, A씨가 B씨를 침대에 눕힌 직후 허 교수의 2차 성추행이 시작됐다. 허 교수는 만취해 항거불능 상태였던 B씨의 신체 곳곳을 만졌으며, 바로 옆에 있던 A씨의 옷 속으로도 손을 넣어 벗기고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A씨는 너무나 놀라 바로 뛰어나가 도망갈까도 생각했으나, 차마 만취한 동료 B씨를 허 교수와 단둘이 두고 갈 수가 없어 어떻게든 허 교수를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허 교수를 내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허 교수는 A씨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고 신체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아버지뻘인 직장 상사에게 당한 성추행의 충격으로 A씨는 한동안 수면제에 의지해야 했고, 자신의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공간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심리적 공황에 빠졌다고 한다. 더구나 병원에서 날마다 허 교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고통은 더욱 커졌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A씨는 결국 2개월 뒤 삼성서울병원을 퇴사했다.
직속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알렸지만 상부 보고 누락
A씨는 퇴사 전 직속 상사인 외과 과장 최 모 교수에게 성추행 피해 내용을 알렸지만, 최 교수는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사실도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취재진에게 “당시 사건 발생 후 피해 간호사가 외과 과장 최 교수와 면담했으나 당시 최 교수는 피해자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듣지 못해 명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상부 보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당시 외과 과장과의 면담에서 허 교수가 강제로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신체 곳곳을 만졌다며 성추행 피해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허 교수, 뒤늦게 연락해 “성추행 기억은 없지만 미안하다”
그런데 사건 발생 10개월 뒤이자 A씨의 퇴사 8개월 뒤인 지난해 3월, 허 교수는 A씨에게 사과를 하겠다며 만나달라고 연락을 취해 왔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그 시점은 삼성서울병원의 한 전공의가 간호사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병원 구성원들에게 대한 대대적인 내부 감사가 준비되고 있던 때였다.
A씨는 고심 끝에 허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허 교수는, 10개월 전 회식날 밤 A씨와 함께 화장실에 있었던 사실과 B씨의 자취방에 함께 들어갔던 사실은 기억나지만 성추행을 저지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씨가 자신 때문에 퇴사를 하게 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2017년 3월 11일 허 교수가 A씨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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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교수 : (만취한 B 간호사의) 집에 가고, 그 화장실에서 보고 토하고 막 하고 그러는 그 장면이 딱 (기억)나고, 그 다음 (기억이) 잘 안 나... 그 다음, 내가 사실은 너한테 어느 정도까지 진척됐는지 모르니까, 내가 그게 좀 힘들어가지고 기억이 안 나니까... 네가 회사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내가 (너한테) 왜 그만 두는지를 물어봐야 되는데, 그게 내 잠재에 있는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이 있었나 했는데, (너한테) 묻지를 못하겠는거야, 무서워 가지고... 직장을 그만두게 만들었으니 미안하다. 평생의 빚을 진 거니까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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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 평생의 빚, 그런 건 아니고 전 조용히 잊고 제 인생 살고 그러면 될 거 같아요. 교수님도 오늘 이후로 그런 감정... 전 솔직히 교수님이 기억하실 거 라고 생각하고. 기억을 못하실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A씨는 당시 허 교수가 성추행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뭔가를 따져 볼 생각도 안 들 정도로 허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관계를 끊어야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앞뒤가 맞지 않는 허 교수의 사과에 대해 “알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 교수는 A씨와의 대화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병원에 보고했다. 병원 측이 취재진에게 보내온 해명 자료에 따르면, 허 교수는 “A씨에게 사과를 했고, A씨가 ‘그때 일을 난 잊어버렸으니 교수님도 잊으시라’면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병원에 보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병원 측은 이 같은 보고에 따라 허 교수의 센터장 보직을 면하는 것으로 후속 조치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A씨와의 직접 면담 한 차례 없이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사건 처리를 종료했다는 것이다.
A씨 “간호사는 의사들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 아니야”
A씨는 “모르는 사람들은 2년 전 일인데다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도 받았는데 왜 힘들어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성폭력을 겪은 사람에겐 아픈 기억과 상처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투운동을 보면서 “병원 내에서 의사와 간호사 간에 업무상 상하관계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간호사들은 의사들이 그렇게 쉽게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며 카메라 앞에 앉게 된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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