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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기억 안 난다” 미투 가해자들의 ‘선택적 기억상실증’



|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난다." 동일 해명,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


#미투’ 운동이 본격화 된 뒤 피해자의 증언을 맞닥뜨린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첫 반응 중 하나다. 배우 조재현씨는 사과문에 “당황스러웠고 짧은 기사 내용 만으로는 기억을 찾기 힘들었다”고 썼고, 하용부 밀양연극촌장은 “오래 전 일이라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지만 내 잘못이다”라는 입장을 냈다. 배우 오달수씨도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았다”고 사과문에 적었다. 왜 가해자들은 집단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걸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형 기억상실’이거나, 무신경하게 지속돼 온 일이라 정말 기억 조차 못하는 ‘상습범형 기억상실’이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의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후일 법적 처벌을 피해기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김지현 고양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기억이 난다고 하면 자백을 하는 셈이니까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며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하는 것도 아닌 ‘기억 상실’은 가해자가 택하기 좋은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한샘과 현대카드 성폭행 사건을 변호 중인 김상균 변호사도 “직접 증거를 찾기 힘든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자백과 같은 진술이 중요하다”며 “가해자가 자백을 하면 신빙성이 있는 증거가 생기는 셈이니까 처벌될 가능성도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정말로 기억을 못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특히 가해자가 상습적으로 성추행·성폭행을 저지르는 사람일수록 기억이 흐릿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 충격적인 경험이 가해자들은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이라 기억이 안 날 가능성이 있다”며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 가해사실 하나 하나에 대한 기억은 흐릿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행이나 물리적 강압이 동반되어야 ‘강간’으로 여기는 낡은 강간 개념도 가해자 기억을 흐릿하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폭행이나 물리적 강압을 동반한 강간은 가해자들도 대개 ‘특별한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권력이나 위계에 의한 강간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기억이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며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의 경우 여성은 어떻게든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던 것을 기억하지만, 남성은 합의된 관계를 맺은 것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들의 ‘기억상실증’에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성폭행 사건의 법적 처리 과정이 결국 진술 신빙성과 정황 증거 다툼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억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를 최대한 확보하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상균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이라며 “기억을 최대한 정확하게 되짚어서 일관된 진술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현 소장도 “결국 기억 싸움이다. 가해자들의 습관화된 성폭행을 많은 이들이 증언할수록 가해자의 기억상실이 궁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